독일은 왜 제로웨이스트가 일상일까? 한국과의 결정적 차이
독일의 Pfand 시스템은 무인 회수기에 병을 넣는 순간 즉시 분류하고, 뒤에서 바로 압축해 재활용 공장으로 보낸다. 이 자동화된 구조 덕분에 재활용률이 90%를 넘으며, 국민들은 “내가 버린 것이 실제로 재활용된다”는 확신을 갖는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행동을 바꾸는 것은 환경 의식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라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베를린 슈퍼마켓에서 마주한 풍경
베를린의 어느 평범한 동네 슈퍼마켓. 장을 보러 온 사람들 손에는 천 가방이나 유리병이 들려 있다. 입구 한쪽에는 빈 플라스틱 병을 넣으면 돈이 나오는 기계가 있고,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공병을 넣는다. 세제 코너에선 누군가 가져온 용기에 세제를 직접 담고 있다.
친환경 전문 매장이 아니다. 그냥 동네 마트다.
한국에서 제로웨이스트는 아직 '의식 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통한다. 하지만 독일에선 그저 일상이다. 이 차이는 대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한국 vs 독일, 시스템이 만든 결정적 차이 5가지
1. 재활용이 '생활습관'이 아니라 '금전적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독일의 Pfand(판트) 제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Bottle_reverse_vending_machines_in_Germany
독일에서는 생수병 한 개를 사면 제품 가격과 별도로 0.25유로(약 370원)의 보증금을 낸다. 맥주병은 0.08유로다. 병을 마트 입구 무인 회수기에 넣으면 보증금이 그대로 돌아온다. 2019년 판트로 수거된 페트병의 재활용률은 97.4%에 달한다.
여기서 핵심은 보증금이 제품 가격과 분리 표시된다는 점이다. 독일 마트에 가면 가격표에 '물 1유로 + Pfand 0.25유로'라고 따로 적혀 있다. 소비자는 "내가 지금 보증금 0.25유로를 더 내고 있다"는 걸 명확히 인식한다. 그래서 반납이 '환경 의식'이 아니라 '돈 찾는 행동'이 된다. 5살 아이부터 80대까지 누구나 자연스럽게 병을 들고 마트에 간다.
한국의 빈병 보증금 제도
한국에도 소주병, 맥주병에 보증금 제도가 있다. 2017년 보증금 인상 이후 소비자 반환율이 47%로 증가했고, 빈병 회수율은 97.4%를 기록했다. 그런데 왜 체감이 다를까?
첫째, 보증금이 제품 가격에 포함되어 있어서 소비자가 잘 인식하지 못한다. 둘째, 마트에 자동 반납기가 거의 없다. 2016년 기준 전국 대형마트 일부에만 무인회수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이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셋째, 페트병은 보증금 대상이 아니다. 소주병, 맥주병만 가능하다.
2. 배출 후 처리의 '투명성'이 완전히 다르다
독일의 투명한 재활용 루트
독일에서 병을 무인 회수기에 넣으면 즉시 분류되고, 뒤에서 바로 압축되어 재가공 공장으로 보내진다. 국민들은 "내가 버린 게 재활용된다"는 확신이 높다. 독일은 2019년 보증금 대상 음료의 41.8%가 재사용 가능한 포장재였고, 이를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한국의 불투명한 재활용 과정
한국에서는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을 열심히 해도 페트병 재활용률은 80%에 달하지만, 이중 고품질 원료로 재활용되는 건 10% 정도에 그친다.
왜 이럴까? 전국 재활용 선별장 341곳 중 투명 페트병 별도 선별시설을 갖춘 곳은 57곳으로 16.7%에 불과하다. 우리가 라벨 떼고 깨끗하게 씻어서 버려도 수거 과정에서 다른 플라스틱과 섞이고, 선별장에 별도 시설이 없어서 다시 오염된다.
분리배출해도 "결국 소각된다던데?"라는 뉴스가 반복되면서 시민들의 동기가 약해진다. 실제로 전문가들이 추산한 한국의 실질 재활용률은 공식 통계 59%가 아니라 40% 정도다.
3. 법적 규제의 '일관성 + 강도'가 훨씬 높다
독일의 강력한 EPR 제도
독일은 1990년 폐기물 포장명령을 제정해 세계 최초로 생산자에게 포장재 회수 의무를 부과했고, 2019년 신포장재법으로 더욱 강화했다. 제조사와 유통사는 반드시 재활용되는 재질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불필요한 포장을 사용하면 벌금을 내고,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지 않으면 세금이 부과된다. 반대로 재활용 소재를 쓰면 세제 혜택을 받는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의 EPR 제도
한국도 2003년부터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는 있되 단계적이고 부분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독일이 가장 모범적인 이유는 시장 경제활동 자체를 순환경제로 바꾸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자는 캠페인은 있지만 강제성은 약하다.
4. 쓰레기를 줄여야 하는 '공간의 압박'이 다르다
독일의 경제적 압박
독일은 오래된 도시 구조에 주거 공간이 좁다. 쓰레기 배출량이 많으면 집 앞 관리비가 올라간다. "쓰레기=돈"이라는 인식이 확실하다.
한국의 대량 수용 시스템
한국은 아파트 중심 주거 형태다. 단지 내에 대형 분리수거장이 있어서 대량 배출도 시스템이 수용한다. 개별 가구의 쓰레기 배출량 부담이 적어 감축 압박이 약하다.
5. 정책이 '일상동선' 안으로 들어와 있다
독일의 접근성
어디를 가든 Pfand 자동 반납기가 있다. 슈퍼, 지하철역, 마트, 동네 소형 상점까지. 독일 전체에 약 4만 대의 공병 무인회수기가 보급되어 있다. "환경 실천 = 일상동선 속 자동화"가 되어있다.
장을 보러 갈 때 빈 병 들고 가서 넣고, 나온 영수증으로 장보면 끝. 귀찮은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동선이다.
한국의 분산된 접근성
정책은 많지만 '실천 장소'가 분산되어 있다. 리필 스테이션이나 자원순환 매장은 일부 지역에만 존재한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면 검색하고, 대중교통으로 30분 이상 이동하고, 빈 용기를 챙겨 가야 한다.
일반 마트에는 포장된 제품만 가득하다.
시스템이 행동을 만든다
독일의 제로웨이스트가 성공한 이유는 국민성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반납하기 쉬운 구조 (전국 4만 대 무인 회수기)
- 금전적 동기 (명확하게 분리 표시된 보증금)
- 기업을 움직이는 규제 (EPR 강제 + 인센티브)
- 투명한 재활용 루트 (97% 재활용률에 대한 확신)
- 어릴 때부터 몸에 배는 교육
이 모든 것이 개인의 노력을 덜어주고 일상을 바꾼다.
한국도 개인의 의지만 강조할 게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모든 마트에 공병 반납기를 설치하고, 보증금을 제품 가격과 분리해서 표시하고, 페트병 보증금 제도를 도입하고, 투명 페트병 별도 선별시설을 확충하고, 과대포장 기업에 페널티를 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제로웨이스트는 '노력하는 사람들의 선택'이 아니라 '모두의 일상'이 될 것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실천들이 모여 목소리가 되고, 결국 시스템을 바꾸는 힘이 된다.